알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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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의 변화

 

19일 부터 시위의변화가 보이기시작했다

 

대학생 중심이던 시위에 계엄군의  불특정 다수에 무차별  폭력을  목도한  시민들과  고등학생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대학생들의 시위에 합류하기시작했다  19일 오후시위에 참가한 시민은 최소 3000명 이상으로 증가 했으며

여기에도  계엄군의 진압 은 가혹하게  대처햇다   계엄군은  남녀노소 행인을 가리지않고 폭력을 가했쓰며

여기에 분노한 시민들은  그다음날 20일에는  시위대 규모가 20만명 이상으로 광주 시내가 꽉찰  정도로  크게  불어났으며  여기에 광주 택시.시내버스 가  계엄군 정면 대치  선두에  서고  뒤를 이어  시민들이  빽빽히  자리했고

그기세에  눌린  계엄군들이  시내 곳곳에서  폭력을  행사하다가  도청  앞으로  철수  대치하는  형국이됐다

 

시위변화 양상을 나열 해보겠습니다

 

5월 18일

오전 전남대에 주둔  계엄군과 학생사이에서  투석전 발생 후  계엄군  과격 진압

일부 학생들  금남로로 이동 시위벌임 

계엄군 도 금남로 이동  강경진압  시위대로 추정대는 시민들도  구타후 체포  광주 공용 터미널에서

청각장애인 김경철 전신구타후 다음날  사망

계엄군의 무차별 구타에  시민들 흥분 자발적으로 학생시위에 동참

계엄 사령관 이희성명의로 방송과 라디오로 해산경고문 발표

 

5월 19일

 

3공수, 11공수, 20사단  총 2만여명 증파

새벽  적십자병원  청각장애인 김경철  첫 사망자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임동 누문동 파출소 방화

시민들이 점차 수가늘어나  금남로에서 계엄군과 투석전 전개  11공수 착검 상태로 강경 진압  자상자 발생

3~4명 한조로  골목마다 누비며 상대를 가리지않고  무차별 폭행 

택시, 시내버스 검문  이또한  근거없는  무차별 폭행  행사

시내 기관장과 유지들이 시위진압을 완화해달라고 계엄 사령부에 건의 했으나 묵묵 부답

계림 파출소 부근에서 고등학생김영찬군이  첫 총상 부상당함 (최초의 실탄 사격)

시민들이 시위학생과합류  수만명으로 늘었쓰며  "전두환 물러가라" 김대중 석방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