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의 전개
517 신군부의 압력으로 개최된 비상국무회의는 5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동시에
계엄 포고령 제 10호 가 선포돼 대학 휴고령 , 보도검열 강화, 정치 활동금지 등의 조치가 내려졋다
518 새벽 2시 전국의 대학교에 군이 투입 점령 했는데 이시간 광주 에서도 제 7공수 여단이 조선대학교와 전남 대학교를 점령했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 5,18 일 아침 9시 텔레비젼, 라디오, 신문 을 통해 비상계엄 전국확대 소식이 보도됐으며
이와동시에 전남대 정문을 지키는 제 7공수 와 학생 100여명이 교문출입 을 놓고 투석전이 시작 됐으며 지금까지와 다른 경찰의 대응 방식과다른 공수 부대의 시위 진압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무차별 구타였다
이에 일부 학생들이 학교 에서 광주 시내인 금남로 이동 하였고, 제 7공수는 오후 4시에 공수여단을 시내에 투입했다 신군부의 시위진압 방식은 신속하고, 강력하게 해산위주가 아닌 체포위주의 과격 진압 이 였고, 육군 참모총장인 황영시 는 강력하게 조치하라 명령을 하달 강경진압을 부추겼다
주요 골자는 이렇다
5월 18일 23시 에 2군 사령부의 강조 사항 전 가용 부대 작전 투입 , 주모자 체포 , 단호한 조치 , 포고령 위반자는 가용수단 동원 엄중처리 소요자 최후의 1인까지 추격 , 타격 및 체포하라 를 지시하여 공수부대원들의 과격진압을 지도, 허용과 동시에 시위를 불순분자의 소행 즉 적으로 간주 비상식적 폭력, 가혹한 진압의 배경이 됐다
518 일 오후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학생,그와 동조하는 시민들을 불순분자 즉 적으로 간주
곤봉과, 군화발 로 학생 ,시민 남여노소 를 가리지않고 무차별로 폭력을 휘둘렀쓰며 심지어는 대검을 이용 자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