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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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폭력적 진압배경

 

1026  박정희 서거이후  그 다음해 5월17일 까지 대한민국은 게엄 하에  있었다

꽤나 긴  계엄 정국 이였던것이다  그 기나긴 계엄 정국에서  신군부 측은  이른바  집권 시나리오를 계획 하였고,

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는데  1980년  2월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지시인,  (K 공작)  을  수립  80년 서울의 봄을

기다리는  민주화 여론을 잠재우고, 신군부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 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해 나가자는  계획이

K공작  이였다

또한  79년  부마 사태에대한  공권력의 개입으로  보안사령부에서  군을  투입  진압  작전을  벌였으나

그당시  중앙 정보부, 대통령  경호실  의  감시하예  그하위 조직인  보안사령부 가  군 투입  진압 작전에  참여만 햇을뿐  주도적이지못한  명령체계로 말미암아  시위에  적극 대처  하지 못해  사건을  키웟다는  엉터리 같은  오판을  한다

 

그렇기에  신군부는 80년 2월  부터  충정  훈련을  만들어  군  진압  작전을  강도 높게 실시 했다

이글을  쓰는  나는 실제 충정 훈련을 해본경험이 있다  물론  실제 작전  투입은 하진 안했지만  말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 잠시  회상을 해본다

그때가  노태우 정권 말기  김영삼에게  대권 후보가  결정되고,  야당은  김대중 .  김종필  

정치적인 지역 대권 구도로  지역감정이 최대로  심화되어있던  시기엿다   당연  각 후보가  다른 지역에 선거유세를 가면 격렬하게  반대 시위가  벌어졋고,  선거 단상에  계란 던지는것은 애교  수준이며  투석전이  심심치않게  벌어지고

이른바  사복 경찰들이  시위대  틈틈히  숨어있다  조금만  이상징후가 보이면  무차별  폭력으로  검거해서  경찰서로  끌고가는 일이 흔한시대엿다

그당시  군인이였던  나는  아침부터  방독면에  진압 투구 , 진압 봉을 들고  어께에는  M16 을  각개매여 하고 

연병장에  집합하여  "질서"  를  외치며  간격을  맟추며  전진하는  훈련이  대부분이였다   그런대 말이다

군대는  줄이다 ..  다시말해서   줄을  잘맞춰야  한다는 명분으로  70~80 명이  좌우 간격을  정확하게

맞추며  이동하는 동작이  쉬운일이 아닌관계로   소위  군 고참들이  여기저기서  지켜보다가  줄이 조금만 틀리면

바로 구타로 이여졌다   진압봉으로  헬멧을  때려버린다  . 방독면을 쒸우고  선착순을  시킨다  그래서

10위 안에 들면  머리 박고  나머지는  다시 선착순을  한다   진짜 미쳐버리게  돌린다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그 선착순은 달리기가빨라야  순위안에드는데  고참인  나보다  쫄따구가  먼저  들어갔다고  훈련끝나고  또따로 집합하여 구타로  이어지는게  일상이였다

이런게  훈련이였다  시위진압 을 위한  훈련이였쓸까?  아니면  군인들에게  악을 심어주는 훈련이였쓸까?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  518 당시  군이  진압 하는데  그 진압 하는 대상이  ..경찰이  몽타주를  보고  어느  특정인물을  찾아내 검거 하는게 아닌  .. 

 

그저  강도 높인 훈련에 길들여진  ..악에 바친  군인들이  그 한풀이를  학생인지 시민인지  구분이 잘안가는  도시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폭력으로  군의 위상  또는  공권력의 위력을   보여주는  그릇 되고, 위함한  발상을  신군부는  준비하고 있었던것이다